2014년 12월 11일 목요일

[스터디플래너]공부=절박함

이시형(76)정신과 전문의·뇌과학자 박사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펴낸 뇌과학자 이시형 박사
학습 가치·중요성 깨달을 때 탄력 받아
‘창조적인 공부’ 필요…성취감 느껴보길
시간제한 두고 몰입·일찍 자면 뇌에 좋아

통계청이 지난 5월4일 발표한 ‘2010 청소년 통계’를 보면 2008년 기준 15~19살 청소년 가운데 절반 이상(57.5%)이 “공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답했다. 이는 2002년(48.9%)보다 10%가량 늘어난 수치다. 잘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으나, 잘한다는 게 맘처럼 쉽지 않은 ‘공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세로토닌문화원에서 우리나라 대표적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76·사진) 박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공부 습관을 만드는 뇌과학적 방법은 무엇인지’ 널리 알리고 싶어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중앙북스)란 책을 펴냈다. 그는 “우리 뇌는 적당한 압박, 적당한 긴장(Optimum Tension)을 좋아하기 때문에 절박함을 느끼는 만큼 공부는 잘된다”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공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공부 잘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공부는 싫은 것’, ‘공부는 괴로운 것’이라는 선입관이 강하기 때문이다. 공부가 왜 필요한지 그 가치와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할 때 학습은 탄력을 받는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고도의 지식사회에서 공부는 우리 인생 전반에 걸친 ‘삶’ 그 자체가 됐다. 또 공부만큼 확실하고 안전한 투자는 없다. 공부는 일단 해 두기만 하면 그 결과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확실한 자산이 된다. 당장 자기 하는 일에 확실한 도움을 주며,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해 낸다. 자산 투자에는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원칙’이 있다. 그러나 공부에 관한 한 ‘저위험 고수익(Low Risk, High Return) 원칙’이 적용된다. 책상 앞에 앉기 전에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공부를 함으로써 어떤 성과를 이룰 것인지 생각하고,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라. 그토록 싫던 공부도 한결 쉽게, 아니 즐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실력’은 ‘진짜 공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진짜 공부’란 어떤 공부인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진짜 공부’란 ‘창조적 공부’다. 영어 단어나 상식 하나 더 외워서 ‘스펙’을 높이는 건 진짜 공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 ‘창조적 공부’는 나이가 들수록, 사회생활 경험이 많을수록 더 잘된다. 왜냐면 풍부한 경험이 공부의 요령을 찾아주기도 하고, 자기 진단이 더 잘된 상태라서 무모하게 시간이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부해야 할 이유가 절실하고, 공부한 걸 응용할 기회가 많아 성취감을 갖기 쉽다.

이에 반해 ‘학교’라는 틀에 갇힌 중고생들이 사회에 진출한 어른들처럼 ‘창조적 공부’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고생들은 학교에서 배울 때 앞으로 ‘창조적 공부’를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운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미술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워야 하는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중고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어떤 지적 활동을 하더라도 꼭 필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또 중고교 시절엔 ‘저절로 익혀지는 것은 없다’는 걸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본능적으로 ‘향상욕’을 갖고 있다. 어려운 도전을 이겨내고 향상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다. 중고교 시절에 좋아하는 것만 하려 하거나, 쉽게 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모든 성취엔 일정한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고통의 과정을 겪고 성취감을 맛보게 되면 다음 도전이 그만큼 쉬워진다.”


“공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공부법의 효율성”이라며 “뇌과학을 알면 공부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뇌가 좋아하는 학습법’ 세 가지를 꼽는다면?

“학습의 기본은 ‘강화’에서 출발한다. ‘강화학습’이 돼야 자율학습이니, 자기주도학습 등이 가능하다. ‘강화학습’은 작은 것을 성취할 때 이뤄진다. 이때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쾌락물질이 분비돼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이 ‘맛’을 보는 게 중요하다. 최근 한 캠프에서 중고생들에게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연설 동영상을 보여주고, 각자 능력에 맞게 연설문 일부를 외우게 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처럼 연설을 시켜봤다. 처음엔 ‘이런 걸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던 학생들이 연설을 마친 후 ‘나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하니 재밌구나’를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도파민이 뇌에서 펑펑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성공경험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둘째는 공부할 때 시간제한(time pressure)을 두는 게 중요하다. 공부하는 데 최적의 뇌 컨디션을 만들어 주는 호르몬이 있는데 바로 ‘세로토닌’이다. 이른바 ‘공부 호르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로토닌은 예민한 신경물질이어서 한 번에 소량만 방출되며 분비 시간도 아주 짧다. 채 30분이 안 되며 효과가 지속되는 것도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다.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을 ‘30분’으로 잘라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러므로 공부할 때 30분간 집중할 수 있는 분량을 정해 놓고 해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등교시간 동안 20개의 영단어를 외운다든지, 야간자율학습 끝나기 30분 전 논술문 한 편을 쓴다든지 외적인 환경에 맞춰 시간제한을 두는 게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플로(Flow) 경험을 중고생 시절에 꼭 한 번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집중했던 일을 마쳤을 때, 참으로 묘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심리학에선 이런 순간의 기분을 ‘플로’라 부른다. 플로는 원래 ‘흐름’이라는 뜻이지만 심리학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잊을 만큼 몰입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인간의 뇌엔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root experience)을 다루는 ‘편도체’가 있다. 식욕이나 성욕, 또는 두려움 등의 감정을 조절하는 곳이다. 평소 의식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공부 좀 하자’고 하면 편도체가 반발한다. 그러나 플로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편도체까지도 공부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된다.”

1분의 명상, 10분의 휴식, 30분의 집중, 6시간의 잠 등 뇌과학 관련 학습법에는 ‘시간’에 대한 내용이 많다. 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시간’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단 뜻인가?

“그렇다. 무엇보다 한국 학생들은 ‘늦게 자는 습관’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엔 반드시 자야 한다. 늦어도 밤 11시 안에는 자야 한다. 왜냐면 이 시간 동안 뇌에선 성장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성장호르몬은 키 크는 것에만 관여하는 게 아니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밤 새워 공부하는 건 효과적이지 않다. 차라리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게 낫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28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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